
모두 너였다
나는 여름이 정말 싫다.
멍하니 창가에 앉아 파란 수국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해리의 표정이 무기력하다. 쨍하던 하늘이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물들더니 실비를 쏟아냈다. 가늘게 금을 그으며 내리던 비는 조금씩 굵어지더니 장대비로 변해 요란한 소리를 낸다. 소나기가 그려내는 빗줄기에 잎사귀들이 춤을 춘다.
유리창에 어깨 너머로 삐죽이 솟아있는 해바라기가 비친다. 시들지 않게 마법을 걸어둔 해바라기는 싱싱함을 뽐내고 있지만 해리의 눈엔 축 처져 보인다.
물기가 어려 연해진 노란빛은 해리로 하여금 과거에 잠겨 들게 한다.
‘해리. 넌 해가 됐으면 좋겠어.’
***
사람들의 눈을 피해 데이트를 해야 하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심통이 잔뜩 나 있던 해리의 고개가 돌아간다. 뜬금없는 그 말에 저절로 시선이 드레이코에게 닿는다.
“해? 하늘에 떠 있는 저 해를 말하는 거야?”
“그래.”
“어째서?”
“지금의 마법세계는 어둠에 잠긴 밤과도 같지. 언제 해가 뜰 지 알 수 없는. 깊은 절망에 사로잡혀 있어.”
낮게 가라앉은 드레이코의 목소리는 왠지 모를 음울함에 잠겨 있는 것 같다. 셔츠에 가려진 손목을 꾹 움켜진 드레이코의 위로 미묘하게 드리워진 그림자에 해리의 미간이 좁아진다.
“네가 빛이 되어 사람들을 밝혀줘. 존재만으로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해 말이야.”
“드레이코.”
“…난 해바라기가 될게. 내가 어디에 있던 해리 너에게 향해 있을 거야.”
무언가 고통스러운 것을 삼키듯 말을 삼킨 드레이코가 속말 대신 뱉어낸 말에 해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정 어린 표현에 면역력이 없는 해리에게 너무 간지러운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념에 빠져있던 해리가 비가 들이치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능숙하게 어둔 그림자를 감추고 말간 얼굴로 웃던 드레이코를 떠올린 해리의 눈에 화가 치민다.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를 쳤어야 했는데.
시커먼 속내를 감추고 있던 그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려줬어야 했는데.
아무 것도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바보 같고 멍청한 그 소리에 휘둘려선 해바라기를 품에 끌어안고 놓지 못하는 스스로가 비참했다. 그와 난 해와 해바라기가 아니다. 해바라기가 되겠다고 했던 이는 자취를 감췄고 해는 추락하여 해바라기에 갇혀 버렸다. 울컥. 눈가로 뜨거움이 치민다.
해리는 오늘도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빛을 잃은 채 추락했다.
전쟁은 끝났다.
어둠은 끝났다.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갔다.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평온했던 나날을 앗아갔고 평범한 학창시절을 앗아갔다.
그리고.
드레이코 말포이를.
***
“해리! 오, 멀린 세상에.”
여름만 되면 죽은 사람처럼 집에 틀어박히는 해리가 걱정이 된 그의 친구들이 찾아 왔다. 굳게 잠겨 있는 문을 능숙하게 연 헤르미온느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해리를 보고 소리를 친다.
론은 묵묵히 해리를 안아 올려 소파로 옮겨준다. 훌쩍 들리는 몸이 그가 얼마나 굶었는지 말해주는 것 같아 착잡해 진다. 초점 없이 텅 빈 눈동자를 바라보는 헤르미온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가여운 자신의 친구는 전쟁과 함께 무너졌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떠나고.
지독한 겨울이 끝나고 전쟁의 상처를 보듬는 바쁜 봄을 보내던 해리는 찬란하게 빛나야 할 여름과 함께 추락했다.
해리에게 여름은 참 지독한 계절이다. 호그와트에서 억지로 떠밀리듯 돌아가야 하는 프리벳가 1번지였고 지독한 하루하루를 손꼽아 가며 학대를 견뎌내야 하는 여름방학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성인이 됐으니 이제 눈부신 여름을 맞이할 수 있겠구나 기대했는데 그의 해바라기가 사라졌다.
시리우스가 장벽 너머로 사라지고 무너지려던 해리를 일으켜 세우고 사람들의 무거운 기대에 힘들어하던 그의 짐을 덜어주고 응원하던 존재의 상실에 여름은 다시 지독한 계절이 됐다.
“지금 당장 일어나서 짐을 싸는 게 좋을 거야, 해리.”
“…헤르미온느.”
“우린 지금부터 약 열흘간의 신나는 휴가를 다녀올 거야. 오, 그동안 우린 너무 혹사당했어! 우리에겐 여름을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고!”
“난 안 가, 헤르미.”
“사실 네 의지는 상관없어 해리. 난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놨거든!”
용의 심장이 들어있는 11인치 포도나무 지팡이가 헤르미온느의 손끝에서 가볍게 춤을 춘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캐리어가 둥실 떠올라 입을 벌리고 해리의 옷들이 차곡차곡 접혀 쌓인다.
막무가내인 헤르미온느에게 화를 낼 법도 하지만 해리는 저와 무관한 일인 듯 가만히 해바라기만 바라볼 뿐이었다.
“근데 헤르미온느. 해리가 해변에 가서 편히 쉴 수 있을까? 어딜 가든 마법사들이 몰려들어 귀찮게 할 텐데.”
“내가 그런 것도 생각 안 했겠니? 우린 마법사들이 없는 머글들의 섬에 갈 거야.”
“머글들의 섬?”
“그래. 휴양 섬으로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느긋하고 모든 것이 여유로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지.”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머글들의 섬인데 어떻게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거야? 아니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마법이 존재했던가?”
“오, 론!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할 수 있는 마법은 없어! 아니 물론 존재하지만 그건 사용해선 안 되는 금지된 마법이야.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지. 오, 물론 타임터너와 같이 시간을 되돌려 주는 물건은 지극히 합법적인 마법 물품이야. 그건 정말 멋진 물건이지. 멋진 만큼 위험한 물건이기도 해.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기 위해선 마법부의 허가서가 필요해. 근데 이런 것도 모르다니 론 대체 넌.”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가 헤르미온느의 잔소리 폭격을 맞게 된 론이 질린 표정을 짓는다. 여행 계획이 어떻게 되냐는 말로 겨우 화제를 돌린 론이 안도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
헤르미온느의 성화에 못 이겨 머글들 틈으로 휴가를 온 해리가 조그맣게 한숨을 쉰다. 론은 머글들의 세상에 들어온 게 마냥 신기한 지 헤르미온느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기 바빠 보였다.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과제 양피지 인치만큼 늘어나자 질린 표정을 해보였지만.
파란 하늘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하얀 구름이 흩어져 있다. 짙은 녹음이 드리운 풍경에 잠시 시선을 준다. 왜 헤르미온느가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표현했는지 알 것 같다. 해리 역시 간만에 크게 숨을 들이쉬며 여름의 향기를 맡아본다.
숙소에 몸을 누이려던 해리가 헤르미온느의 손에 이끌려 바닷가로 간다. 코끝에 바다향이 스민다. 에메랄드 빛 바다에 하얀 모래가 사진에서나 보던 모습이다. 해리의 눈동자에 순수한 감탄이 어린다.
“어떠니? 여기 좋지 않니?”
“좋네.”
“맛있는 건 없어?”
“론! 정말이지 넌 낭만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구나!”
무신경한 론의 말에 감상에 젖어 있던 헤르미온느의 둥근 눈이 세모꼴이 된다. 잘못 건드렸구나 싶은 론이 어깨를 움츠린다. 그러면서도 얼굴엔 억울한 표정이 한 가득이다.
모처럼, 정말 오랜만에 해리는 둘의 모습에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사이 해가 금세 떨어진다. 해가 넘어가며 빚어내는 아름다운 석양빛에 세 친구는 나란히 앉아 하늘을 감상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진 밤하늘에 무수히 작은 별들이 총총 박혀 빛을 낸다.
수다스럽던 헤르미온느와 론도 조용히 하늘을 감상한다. 헤르미온느의 머리가 론의 어깨에 살그머니 올라간다.
두 친구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 해리가 홀로 밤 산책을 떠난다.
해변을 따라 자박자박 걷다 보니 요동치던 마음이 고요해지는 기분이다.
잔잔한 밤바다를 보며 해리는 다시 지독한 상념에 빠진다.
***
“해리.”
드레이코의 부름에 그의 등에 한껏 몸을 기대고 있던 해리가 슬쩍 고개를 든다. 어깨에 툭 내려앉는 머리는 왜 부르냐는, 부름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다.
“너는 별을 좋아해?”
“별?”
“그래.”
“음…별 생각 없었는데. 천문학은 재미없다, 뭐 이런 거?”
“꿈 많은 소년이 너무 낭만이 없는 거 아냐?”“성장기 소년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냐?”
드레이코의 억양을 따라하는 해리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난 별 보는 걸 좋아해. 내가 어디에 있던 나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이 별을 바라보고 있다는 거잖아.”
“달도 그렇잖아.”
“그래. 달도 그러네. 그럼 해리 넌 달을 하도록 해. 난 별이 될게. 달 주위에 무수히 많은 작디작은 별 하나.”
“드레이코 저번부터 영문 모를 소리만 자꾸 하고 있는 거 알고 있어?” 콧등을 찡그린 해리가 드레이코의 등에 머리를 쿵 박는다. 이상한 말을 자꾸 하는 드레이코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드레이코는 아무 말 없이 무게를 실어오는 해리를 받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
간밤에 드레이코에 대한 생각에 술을 찾은 해리가 눈물로 퉁퉁 부은 눈을 억지로 뜬다. 커튼이 없는 창으로 뜨거운 햇살이 자비 없이 내리쬔다.
사위가 조용한 것을 보니 숙소엔 해리뿐인 듯하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 해리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헤드위그가 집으로 착각하고 내려앉을 엄청난 머리를 한 해리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을 찾는다.
욕조에 물을 잔뜩 받아 깊숙이 몸을 담그자 피곤한 몸이 노곤하게 풀린다.
‘해리. 샤워부터 하고 욕조에 들어가야지.’
지독하게 저를 괴롭히는 드레이코의 목소리가 다시 찾아든다. 도망치듯 머리끝까지 몸을 담근 해리의 위로 공기방울이 방울방울 솟아오른다.
하나 둘 늘어나던 공기방울이 셀 수 없이 많아지더니 벌떡 몸을 일으킨 해리가 참았던 숨을 토해낸다.
그 잠깐 사이 빨개진 눈은 물속에서 괴롭게 버틴 탓일까, 울어서일까.
“빌어먹을.”
결국 몸을 일으킨 해리가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욕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면.
어딜 가야.
벗어날 수 있을까.
괴롭게 얼굴을 묻는 해리의 손 틈새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도망치고 싶은데 도망칠 수 없다. 어딜 가든 그 곳에 드레이코가 존재했고 어느 순간에도 불쑥 고개를 들이밀고 저를 괴롭혀 왔다.
가을도.
겨울도.
봄도.
전부 괴로웠지만 가장 괴로운 건 그가 떠나버린 여름이다.
해리 제임스 포터가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는 오직 그 때문이다.
여름날 내리는 시원한 소나기가 싫어진 것도.
쨍한 하늘 아래 서 있는 게 싫어진 것도.
작은 별을 보며 괴로워하게 된 것도.
전부.
모두.
너 때문이었다.
너는 한 여름의 소나기가 되었고.
시리도록 흐린 하늘이었으며.
눈부신 파랑이 되었다가.
바람에 살랑 거리는 수국이기도 했다.
해를 바라보며 고개를 드는 해바라기 또한 너였다.
내가 싫어하는 모든 것이 너였고.
내가 그리워하는 모든 것이 너였다.
***
잔뜩 울어 엉망이 된 얼굴을 친구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숙소를 나선다. 목적 없이 무작정 걷는 해리의 발걸음이 위태롭다.
툭. 툭. 어깨에 부딪히는 충격에도 해리는 많지 않은 사람들 틈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었다.
앞을 보고 있지만 초점 없이 멍한 눈동자는 이곳이 아닌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 고통에 잠겨 있다.
멍하니 걷던 해리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선다.
말 하나 통하지 않는임 머글들 틈에서 불쑥 솟아오른 눈부신 해바라기를. 해리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드레이코…?”
마치 해리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돌아보는 얼굴은 그렇게나 그리던 임의 얼굴이라. 해리의 몸이 파르르 떨려온다. 숨이 멎기라도 하듯 잔뜩 들이킨 숨은 도통 내뱉어지지 않는다. 마치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듯 입만 뻐끔 거리는 해리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드레이코 역시 해리를 알아본 듯 멀리서도 당황한 그의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 뒤로 주춤 한 걸음 물러나려던 드레이코가 해리의 이상을 눈치 챈 듯 가까이 다가선다.
“해리…? 해리…!”
해리가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은 드레이코가 놀란 얼굴로 해리의 이름을 부른다. 드레이코의 손이 해리의 등에 닿고 그제야 숨을 몰아쉬는 해리의 얼굴은 잔뜩 젖어있었다.
“너…. 너 이 자식…! 이, 나쁜…!”
“해리….”
품에 한 번 안아주지도 않는 드레이코를 잔뜩 노려보는 해리의 얼굴은 분노와 그리움, 안도와 반가움이 뒤섞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지려는 몸을 꿋꿋하게 버티고 선 해리가 악다구니를 쓴다. 너 대체 뭐냐고. 대체 뭐 하는 놈이냐고. 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었던 거냐고. 왜. 왜 그렇게 떠났냐고.
조용한 섬에 울려 퍼지는 분노에 찬 목소리에 이목이 집중 된다.
“해리. 자리 옮기자.”
싫다고 소리치면서도 혹시나 드레이코가 다시 사라질까 그가 붙든 손을 놓지 못한 해리가 드레이코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
“들어와.”
“그 동안 이런 곳에 숨어 있었어?”
“해리. 난 숨어 있지 않았어.”
“숨어 있었어. 도망 쳤어. 나에게서. 나로부터. 멀리.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쳐서 숨어 있었잖아!”
“해리….”
“머글이라면 질색을 하던 네가 머글들 틈에 섞여서 살고 있는데 그게 숨어 있는 게 아니라고? 도망친 게 아니라고?!”
악에 받힌 외침에 드레이코의 얼굴이 어둡게 물든다. 주먹을 내지르려다 차마 뻗지 못한 해리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잔뜩 힘을 준 손끝이 살갗을 파고드는 걸 눈치 챈 드레이코가 조심스레 주먹을 감싸 쥔다.
“멍청하게 왜 때리지도 못하고 있어.”
“말이면 단 줄 알아? 나쁜 자식.”
해리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어린다.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많이 약해진 것 같아서 드레이코는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말 해. 왜 그랬는지. 잘난 그 입으로 변명이라도 해 보란 말이야!”
“…무서웠어.”
“뭐?”
“너는 마법세계의 영웅. 네 실체가 어떻던 해리 넌 마법세계의 영웅이고 종전의 상징이지. 네가 정의고 빛이고 희망이야. 그리고 난 그런 너를 좀먹는 어둠이지.”
“뭐?”
“어둠의 마왕 아래서 용서 받지 못할 짓을 하던 죽음을 먹는 자. 네 부모를 죽인 어둠의 마왕을 추앙하던 아버지는 네 대부와 전투를 벌이다 그를 장막 너머로 가게 만들었지.”
“그건 벨라트릭스가!”
“그녀는 내 어머니의 형제고.”
“네 어머니는 나를 살렸지. 그리고 넌 나를 살리고 전쟁을 도왔어. 넌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야!”
“해리.”
“이 빌어먹을 드레이코 말포이! 만약 그런 이유 때문에 날 떠난 거라면 정말 가만 두지 않겠어!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알아?!”
“해리….”
“젠장…. 난 달이 아냐…. 해는 더더욱 아냐…. 별이 어쨌다고? 해바라기가 되겠다고? 이런 게 별이고 해바라기가 되는 거야? 말해, 드레이코 말포이….”
“내가 어디에 있던 난 너를 향해 있을 거야. 네 빛을 따라 움직일 거야. 너를 사랑할 거야.”
드레이코에게 달려든 해리가 그의 멱살을 틀어쥔다. 잘게 떨리는 몸이 그의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설마 했다. 혹시 싶었다. 그런데.
“젠장. 빌어먹을 말포이. 난 빛나지 않아…. 빛을 잃었다고…. 알아? 네가 있어야 빛날 수 있다는 걸 왜 몰라…. 어째서 넌…, 왜…, 이렇게 멍청한 거냐고….”
드레이코의 옷깃을 붙들고 있던 해리의 몸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린다. 아래로 꺼지는 해리를 따라 몸을 낮춘 드레이코의 얼굴이 착잡함으로 물든다.
“해리. 넌 누구보다 찬란히 빛날 수 있어. 넌…너는…….”
“빌어먹을…. 망할 드레이코…. 나쁜 자식.”
짙어지는 눈물에 애써 미소를 유지하고 있던 드레이코의 얼굴 역시 무너져 내린다.
“왜 이렇게 말랐어. 얼굴은 왜 이렇게 상한 건데….”
“그거야 당연히…!!”
“미안…. 미안해. 미안하다. 미안해….”
“읏….”
저보다 더 아픈 눈을 하고 있는 드레이코와 눈이 마주 친 해리의 표정이 젖어든다. 멎었던 눈물이 아까보다 더 많이 흘러내린다.
드레이코는 그의 상처를 보듬듯, 지난날을 사과하듯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해리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잔뜩 젖어버린 눈가에도, 콧물이 흘러내리는 콧등에도, 너무 울어 붉어진 두 뺨에도, 아프게 깨물어 하얗게 번진 입술에도 조심스레 입 맞춘다.
또 사라지면 죽여 버리겠다고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평생 옆에서 잘못했다 용서 빌라는 해리의 말에 꼬박꼬박 그러겠노라 대답 한다.
절대 어디 가지 않겠다고.
네 옆에 꼭 붙어 있겠다고.
***
톡. 톡. 창가에 비꽃이 핀다.
동그랗게 떨어져 내리던 빗줄기가 길게 줄을 긋는다.
마당에 피어 있던 박하가 춤을 춘다.
찬란한 여름 위로 소리 없이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